1994. 7. 『조사연구』7, 한국조사기자회


멀티미디어의 향방


김  현


1.


  일본 소니社의 연구원 도이 박사는 그의 회사가 필립스와 공동으로 수행한 컴팩트 디스크 개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업적으로 인해 ‘멀티미디어의 아버지’라는 명예로운 별명을 얻은 사람이다.  미국의 한 잡지사 기자가 그를 방문하여  멀티미디어 기술의 이모저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당신은 멀티미디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은 던졌다. 그러자 도이는 그 물음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을 회피한 채, 대신 중국의 우화 한 가지를 이야기하였다.  우리도 익히 알고 있는 「장님과 코끼리」의  이야기였다.

  기업가, 기술자, 교육자, 언론인 ...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컴퓨터 기술의 총아인 멀티미디어를 접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그것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지만, 어느 누구도 “멀티미디어는 이런 것이다”라고 자신있게 설명해 내지는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은 이미 도이가 지적했듯이 ‘멀티미디어’를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장님이 커다란 코끼리의 일부분을 만져보고 “코끼리는 이런 것이야”라고 말하는 격임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멀티미디어’라는 말처럼 흔하게 膾炙되면서, 그리고 막연하게는 이해하면서, 정작 그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규정하지 못하는 예는 찾아 보기가 어려울 것이다.

 ‘멀티미디어’란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인가? 만일 그것이 장님이 만지는 코끼리처럼 개개인의 사고력으로  더듬어 알기에는 너무나 규모가 큰 것이라면, 다양한 부분적 설명들을 모두 종합함으로써 가장 포괄적인 답안을 유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재미삼아,  코끼리를 만진 장님들이 자기만의 고집을 버리고 서로의 의견을 받아들여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그리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통나무같은 다리, 뱀같은 꼬리, 벽같은 몸체를 모자이크 조각 맞추듯이 맞추어 보니 코끼리 비슷한 무엇이 만들어졌다. 그들은 공동의 노력으로 형상화한 그것이 코끼리의 실제 모습에 부합하는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다시 한 번 코끼리의 몸체를 더듬어 보기로 하였다. 코끼리를 향해 손을 내미는 장님들의 마음은 먼저번의 막막한 심정과는  달리 상당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제는 이놈의 모양을 확실히 알 수 있겠지!” 하는 ...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이번에 만져진 코끼리의 부분 부분은 먼저번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한 아름이나 되던 굵은 다리는 말의 다리처럼 날씬해져 있었고, 뱀같이 가늘고 길었던 꼬리는 토끼 꼬리처럼 몽톡한 꼴이었다. 장님들이 앞서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코끼리의 실체에 대해 숙의하던 사이 그놈은 자신의 모양을 이상한 꼴로 바꿔 버리고 만 것이었다. 장님들은 새로 입수된 정보를 놓고 코끼리의 모습에 대해 다시 논란을 벌이기 시작했다. 상황은 먼저보다 더욱 막막했고 논의만 있을 뿐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느덧 날이 저물어 코끼리 몰이꾼이 코끼리를 데릴러 왔다. 장님들은 몰이꾼에게 하소연하듯이 물었다. “저놈은 무슨 종류의 코끼리요?” 몰이꾼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멀티미디어라는 코끼리요.”


2.


  멀티미디어를 무엇이라 규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것이 아직 ‘정착되지 않은 기술’이기 때문이다. 멀티미디어를 그렇게 이야기하는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그 첫번째는 제품 개발의 기술적인 측면에서이다. 컴퓨터의 역사는 이제 겨우 반세기에 불과하며,  더구나 컴퓨터 관련 기술의 막내에 해당하는 멀티미디어의 역사는 늘려잡아도 10년 남짓이다. 다른 공업 기술 분야였다면 아직 연구실을 빠져나오지도 못했을 나이에 이미 세계의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 바로 멀티미디어 제품들이다. 하지만 제품 개발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이 분야의 기술은 여러가지 면에서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멀티미디어’는 일단 그것의 상대 개념인 ‘모노미디어’의 종합체라고 상정할 수 있다.  모노미디어란  문자, 음향, 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정보 중 어느것 한 가지를 전담하는 매체를 뜻한다.  라디오와 전축은 음향정보를 유통시키는 모노미디어이며, TV와 VCR은 영상정보를 전달․보급하는 모노미디어들이다.  멀티미디어 시대에 돌입하기 전 컴퓨터는 문자와 수치 정보를 처리․전달하는 모노미디어의 일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자와 수치만을 취급하던 컴퓨터가 그림과 소리도 다루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움직는 영상까지도 데이타로 취급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의 컴퓨터는 문자․음향․영상 등 과거 모노미디어들이 한 가지씩 전담하던 정보의 여러 형식을 모두 포섭하고 그것들을 정밀하게 콘트롤하는 기능을 갖게 됨으로써 이른바 ‘멀티미디어’의 주축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의 기능을 확장한 멀티미디어는  ‘종합적인 정보 처리’라고 하는 점에 있어서는 모노미디어들보다 발전적이지만 음향․영상 등 개별 정보의 가공 수준은 아직도 모노미디어의 그것에 비해 뒤져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여러 가지 유형의 멀티미디어 정보들을 내용의 유관성에 따라 연계시키는 멀티미디어 데이타베이스 기술도 아직은 실험적인 요소가 많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불완전함을 극복하기 위해 멀티미디어 관련 제품들은 한 달이 멀다 하고 변신을 거듭한다.

  멀티미디어의 끊임없는 변신은 그것이 기술 발전의 과정이라고 하는 점에서 부정적이기보다는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기술 그 자체만 놓고 보면 거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다.  문제는 그러한 기술 발전의 중간 제품들이 소비자와 관계를 맺는 데서 파생한다. 새로운 기술은 언제나 막대한 개발 투자를 요구한다.  멀티미디어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들은  현재 모습이 아무리 불완전하다고 해도 적지 않은 개발 투자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투자 비용이 많을수록 자금 회수의 부담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개발비를 건지기 위해서는 만들어진 물건들을 빨리 팔아야만 한다. 멀티미디어 제품들은 화려한 데모 프로그램으로 치장되어 소비자의 가정과 사무실에 침투한다.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비싼 값을 치루고 구입한 이 첨단 제품들이 될 수 있는대로 오래동안 유용한 구실을 해 주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한 기대는 하드웨어의 규격이 일정하게 통일되고 그에 따라 소프트웨어들이 안정적으로 공급될 때나 실현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제품의 안정을 바라는 소비자의 기대는 아랑곳없이 멀티미디어 상품들은 보다 향상된 기능,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 줄 상품 가치의 증대를 위해  변신을 거듭한다. ‘멀티미디어의 제품은 사는 순간 고물이 된다’는 사실을 경험한 소비자들에게 있어 그것은 종잡을 수 없는 카멜레온 같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 분명하다.


3.


  멀티미어를 이해하기 어렵게 만드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것의 용도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필자는 앞에서 멀티미디어를  모노미디어의 종합체라고 이야기하였지만, 그것은 멀티미디어가 다루는 정보의 유형만을 지적한 단편적인 말에 불과하다. 멀티미디어를 이해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떠한 유형의 정보를 취급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이 담당하는 기능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만일, 누가 신문에 대해 “문자화된 정보를 종이에 담아 전달하는 매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신문에 대한 올바른 정의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신문의 기능은 우리 사회의 구석 구석에서 발생하는 갖가지 정보를 수집․분석하고 그것을 정리․전달함으로써 민의를 대변하고 계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신문의 기능은 신문제작을 가능하게 한 인쇄술의 발달만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다.  言論이라고 하는, 문명사회의 거대한 한 부분이 자기 논리를 가지고 발전해 가면서 그 시대에 가장 걸맞는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서 ‘인쇄물’이라고 하는 매체를 선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신문뿐 아니라 대부분의 모노미디어들은 짧지 않은 성장 과정을 통해 이제는 저마다 뚜렷한 입각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매체 제작 기술도 그 고유한 입각점에 기인한 자율적 통제를 받아 일정한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멀티미디어는 상황이 다르다. 한 마디로 이 분야에는 주인이 없다.  우리 사회는 아직 멀티미디어 제품들에 대해 그것이 적절하게 쓰여질 곳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것의 기술 수준과 발전 방향에 대해 아무런 통제력도 행사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멀티미디어는 그것의 운영환경을 만들어 내는 개발조직의 상업성에 전적으로 내던져져 있는 듯한 느낌이다.

  컴퓨터 관련 기술의 많은 부분은 ‘필요해서 만들어진 것’이기보다 ‘가능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가능성을 추구하여 개발된 신기술은 상품화됨으로써 비로소 수요를 창출하기 시작한다. 수요가 공급을 낳는 것이 아니라 공급이 수요를 만드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그 새로운 기술상품의 필요성을 평소부터 절감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따라서 신기술상품은 그것의 실용성을 강조하기보다는 새로운 것에 이끌리는 ‘호기심’에 호소한다. 그리고 당장 무엇에 쓸 수 있다고 하는 현실성보다는 앞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는 ‘가능성’을 역설한다.  호기심을 자극하고 가능성에 들뜨게 하려면 화려하기 그지없는 깜짝쇼를 연출해야 한다. 멀티미디어 분야의 신기술상품들은 시청각 위주의 감각적 요소들을 두루 긁어모아 화려한 전시 장면을 연출해 낸다. 가요 반주에 동영상까지 곁들인 멀티미디어 노래방, 입체 음향에 자극적인 애니메이션의 멀티미디어 게임, 감각 기능을 최대한 활용케 하는 멀티미디어 유아 교육 프로그램 ....  요즈음 우리 주위에 쏟아지는 이러한 유형의 소프트웨어들과 그것의 운영 환경이 되고 있는 하드웨어는 일반인들에게 멀티미디어란  ‘흥미 위주의 놀이도구’라는 인상을 심어 주고도 남음이 있다. 멀티미디어의 주축인 컴퓨터가 문자와 수치를 다루던 정보처리 기기였음을 상기하면 ‘놀이도구’로의 변신은 정말 놀라우면서 한편으론 혼란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멀티미디어가 발전해 나아갈 방향은 바로 이러한 것인가?

  멀티미디어 기술이 컴퓨터에 선사한 ‘놀이도구’로서의 기능은 값비싼 멀티미디어 컴퓨터의 판촉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당장 실용적 용도가 없는 멀티미디어 기기의 판로가 열리지 못했을 것이고, 막대한 제품 개발비의 회수가 막막했을 것이다. 그러한 현상은 개발 업체들의 투자 의욕을 감퇴시켜 멀티미디어 산업을 뒷걸음질 치게 할 수도 있다. 이 점에서 멀티미디어의 놀이도구화는 긍정적인 면도 없지 않다.  하지만 ‘놀이도구’라고 하는 것은 멀티미디어가 가져야 할 궁극의 모습이 아님이 분명하다. 멀티미디어 컴퓨터는 노래방과 게임기로만 쓰기에는 너무나 비싼 고가의 장비이다. 신기한 것에 대한 호기심은 상품 구매의 動因이 될 수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한시적일 뿐이다. 놀이도구로서의 멀티미디어의 모습은 그것이 올바른 자기 기능을 정립하지 못한 단계에서 市場性을 扶支하기 위해 변신한 姑息的인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멀티미디어가 도대체 무엇인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는 멀티미디어가 제 기능을 정립하지 못한 채 이처럼 소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향으로만 떠도는 데서 찾아진다.


4.


  멀티미디어는 그 용어처럼  含義가 多重的이기 때문에 간결한  정의가 쉽지 않은데다, 기술적․문화적 이유에서 아직 안정적인 상태에 도달하지 못한 미완의 기술이기 때문에 그것의 向方에 대해 무엇이든 단언하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우리 사회의 문화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고 그 영향력이 앞으로 계속 증대될 것이라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앞에서 이미 강조하였듯이 상황은 그렇게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초창기의 멀티미디어 산업은 하드웨어어 생산자들에 의해 주도되었고, 제품의 판촉 위주로 그 기능의 수준과 발전 방향이 정해져 왔다.  멀티미디어가 그 성격과 기능을 통제할 올바른 주인을 만나지 못한 채 계속 상업성의 논리만을 좇아간다면 그것은 날이 갈수록 향락성향의 놀이도구나 감각적인 시청각 정보의 유통수단으로 전락해 갈 것이 분명하다.

  이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는 멀티미디어에 대해 적절한 기능을 부여하고 그 올바른 기능에 입각한 통제를 가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멀티미디어의 올바른 所在는 어디인가?  그것은 물론 좁은 범위에 한정할 수는 없다. 마치 신문의 주된 기능이  ‘새로운 소식의 보도’에 있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감각적인 오락물의 기능을 하는 신문도 있듯이, 우리들이 멀티미디어에 대하여 어떤 역할을 부여한다고 해서 그것이 거기에만 머물러 있으리란 법은 없다. 그러나 중심이 서게 되면 그 일탈의 범위는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필자는 멀티미디어가 비록 문자, 음향, 영상을 아우르는 종합매체라 할지라도  그것의 주된 입각점은 ‘문자 정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문자는 곧 언어이며 언어는 곧 사유이다. 자연상태의 영상과 음향을 그대로 채취하여 전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인간의 사유 능력에 의한 分析․整理․評價의 記述을 수반하지 않은 정보는 자칫 모호해질 뿐 아니라 맹목적인 감각 위주로 흐를 수가 있다.  컴퓨터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警異의 대상이 되었던 이유는 음향을 녹취하고 영상을 재생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다. 언어를  가지고 대화할 수 있으며, 문자로 정리된 정보를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멀티미디어 시대를 맞아 시청각 정보가 새로 컴퓨터의 영역 속으로 들어왔지만, 그것들이 데이타베이스 안에서  문자 정보 적절하게 연계되지 않는다면 정보로서의 가치를 지니지 못하게 된다.

  멀티미디어의 본령은 종합적인 정보의 전달에 있다. 멀티미디어가 정보화 사회를 이끌어 갈 핵심기술로 평가받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정보 관리 및 정보 유통의 기능 밖에 있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정보의 핵심은 인간의 사유 능력에 의해 정리된 문자 정보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정보화 사회의 핵심 기술인 멀티미디어 사업의 주인이 될 사람들이 누구인가는 자명해진다. 세계의 각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과 쉼없이 발전해 가는 각분야의 지식을 입수하여 정리하고 우리의 言語․文字를 통해 그것을 각계각층에 전달하는 것은 ‘言論’의 고유한 기능이다. 멀티미디어는 언론의 그같은 기능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도구의 역할을 담당해야 하며, 그것에 의해 올바른 발전 방향을 제시받아야 한다.